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족 공국 (문단 편집) == 상세 == [[독일 왕국]]과 초기 [[신성 로마 제국]]은 [[작센]], [[프랑켄]], [[슈바벤]], [[바이에른]], [[로트링겐]] 등 5개의 부족 공국(Stammesherzogtum)으로 구성되었다. [[동프랑크 왕국]] 시절 왕권이 계속 약해지면서 각 부족들의 독립성과 자치권이 강화되었다. 899년 [[카롤루스 왕조]] 출신 마지막 국왕인 [[루트비히 4세(동프랑크)|유아왕 루트비히]]가 6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게 되었다. 이때 [[마자르족]]과 [[데인#s-1|데인]]족이 잇달아 쳐들어왔고, 어린 왕이 국사를 주관할 수 없는 상황에서 5대 부족 지도자들이 직접 나서서 외침을 물리쳐야 했다. 이런 상황을 거치며 5대 부족 공국들의 자치권이 대폭 확대되었다. 911년 [[루트비히 4세|유아왕 루트비히]]가 죽으면서 카롤루스 왕조가 단절되자 [[게르만족]]의 전통에 영향을 받아 5대 부족 대표들이 모였고, 특히 5대 부족의 대표인 공작들의 의중이 크게 작용하여 [[독일왕|독일 국왕]]을 뽑았으며 이러한 전통이 지속되면서 [[신성 로마 제국]]의 [[선제후]]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들 5대 부족 공국은 동프랑크 왕국의 후신인 [[독일 왕국]]을 거쳐 962년 개국한 [[신성 로마 제국]] 시대로 이어지면서 제국의 하위 행정 단위 역할을 했다. 프랑크 왕국 시절부터 5대 공국 이외에 [[튀링겐]] 변경백국이 존재했다. 튀링겐 [[변경백]]은 다른 백작들보다 위상이 높았고, 때때로 공작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5대 공작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는 못했다. 튀링겐 변경백국은 독일 왕국에서 5대 공작령과 더불어 독립적인 행정 단위로 인정받았으나 튀링겐 변경백에게는 국왕 선출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후 1180년, 강력한 제국과 황권을 추구했던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가 자신의 오랜 강력한 라이벌인 작센 및 바이에른 공작 [[하인리히 사자공]]을 제압하고, 그의 영지를 몰수하여 자신의 측근 제후들에게 쪼개어 재분배하면서 5대 공국 체제가 해체되었고, 독일에는 영방제후국 시대가 시작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